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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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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피아졸라 사이에서 만난 한수진의 가을 살집 있는 바이올린과 수채화처럼 맑은 ECO 지휘자 없이 함께 빚어낸 첫 협연 음반 10월 4도시 공연…비발디 ‘사계’로 만난다 SH 아트앤클래식 제공 [스포츠동아 양형모] 가을이다. 어느새 10월이다. 이 앨범에 담긴 두 개의 ‘가을’을 다섯 번 정도씩 들은 것 같다. 피아졸라의 가을과 비발디의 가을. 여기에 한수진과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ECO)의 가을. 닮은 곳보다 다른 곳이 많은 가을들이다. 피아졸라에서는 절뚝거리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다가도 환희가 불쑥 솟는다. 비발디에게선 신의 선물 같은 순간들이 맑은 수채화처럼 번진다. 그 안에서 한수진의 바이올린은 손에 잡힐 듯 펄떡인다. 다섯 번쯤씩 들었지만, 가을을 만지고 조물딱거린 횟수는 다섯 번의 다섯 배쯤 되는 것 같다. 귀로 들었는데 손끝에 하얀 가을 가루가 잔뜩 묻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ECO와 녹음한 앨범 ‘사계(The Seasons)’가 9월 25일 오키드 클래식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두 번째 음반이자 첫 협연 음반.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를 먼저 담고 비발디의 ‘사계’를 뒤에 놓았다. 한수진은 독주뿐 아니라 디렉터까지 맡았다. 익숙한 작품들이다. 특히 비발디의 ‘사계’는 클래식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몇 소절이면 충분히 알아챌 것이다. 너무 익숙해서 굳이 다시 찾아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음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수진이라고 별게 있을까’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실은 마음이 콩닥콩닥했다. 한수진이니까 다를 거야. 어떻게 다를까.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긋지긋하도록 들어온 그 ‘사계’들과 비교해 보고 싶어 몸이 간지러웠던 거다. SH 아트앤클래식 제공 9월 30일 서울 용산구 사운즈S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수진이 설명한 것도 ‘같은 악보에서 서로 다른 음악이 태어나는 이유’였다. 연주자마다 경험과 기억, 성향과 감정이 다르기에 악보를 충실히 따라도 음악은 달라진다고 했다. 이를 설명하며 꺼낸 단어가 ‘프리즘’이었다. 앨범을 먼저 들은 나로선 수긍하기 쉬운 얘기다. 피아졸라와 비발디가 써놓은 가을 사이에서 내가 한수진과 ECO의 가을을 따로 느낀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악보는 같아도 연주자가 살아온 시간까지 같을 수는 없다. 내가 그동안 들어온 한수진의 바이올린은 꽤 듬직한 ‘몸통’을 갖고 있었다 바다이야기릴게임추천 . 음 하나하나에 살이 붙어 있다. 바디감이 충만하다. 손으로 쥐면 한 움큼 잡힐 것 같은 소리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 두툼한 소리가 무게를 조금 덜어낸 듯하다. 특유의 살집은 여전한데 한층 맑게 울린다. 소리가 풍성하면서도 답답하지 않다. 비브라토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지나치게 빠른 떨림으로 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슬픔을 들려주겠다고 듣는 사람의 소매를 붙잡거나 아름다운 대목마다 밑줄을 두 번 긋지 않는다. 덕분에 듣는 사람도 각자의 속도로 음악에 다가갈 수 있다. 기교가 뛰어나지만 그것을 구경하느라 음악을 놓치게 하지는 않는다. 한수진의 연주에서 종종 물을 떠올리는 이유다. 음색과 기교, 템포가 서로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맛이 없거나 싱겁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물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 싶어 새삼 감탄하게 된다. SH 아트앤클래식 제공 이런 자연스러움은 ECO와 만났을 때 더욱 빛난다. ECO의 현악은 투명한 수채화 같다. 손을 집어넣으면 반대편으로 쑥 빠져나올 것처럼 맑다. 그 안에서 한수진의 바이올린이 악단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누구 하나 애쓰는 기색 없이 음악이 성큼성큼 나아간다. 듣는 나까지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녹음은 2025년 9월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나흘 동안 진행됐다. 별도의 지휘자 없이 한수진이 독주를 하며 악단을 이끌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악단 앞에서 자신의 구상을 제시하는 일이다. 게다가 ECO는 나이젤 케네디와 비발디 ‘사계’를 녹음한 악단이기도 하다. 한수진도 처음에는 긴장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단원들은 첫 연습부터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쉬는 시간에도 표현을 의논했고, 악장과 수석들은 녹음한 소리를 함께 확인하며 더 나은 연주를 찾았다. 독주자의 주문에 악단이 맞추는 데서 끝나는 작업이 아니었다. 한수진은 이를 ‘모두의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다. 그 설명을 접하니 앨범에서 좋았던 부분들이 다시 떠올랐다. 독주가 악단의 소리 위에 따로 얹혀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한수진을 따라 듣다가 어느새 ECO에 귀를 기울이고, 악단을 듣다 보면 다시 바이올린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서로 밀고 당기는 호흡이 좋아 어느 순간부터는 독주와 반주를 나눠 듣지 않게 됐다 다빈치게임 . 음반은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름’으로 문을 연다. 가을, 겨울, 봄이 뒤따른다. 봄부터 겨울까지 한 해를 차례로 밟아 나가는 비발디와는 출발부터 다르다. 작품이 만들어진 방식도 다르다. 비발디의 ‘사계’는 각각 세 악장으로 구성된 네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피아졸라의 네 계절은 처음부터 한 묶음으로 쓰이지 않았다. 1965년 ‘여름’이 먼저 태어났고 나머지 계절들이 뒤에 더해졌다. 독립적인 탱고 작품들이 모여 ‘사계’가 됐다. 이 음반에서는 레오니드 데샤트니코프가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판본을 연주한다. 이 버전에는 비발디 ‘사계’의 선율이 인용돼 있다. 피아졸라를 듣다가 귀에 익은 비발디를 만나게 된다는 얘기다. 두 작곡가 사이에 편곡자가 문을 내놓았다. 내 귀에 들어온 피아졸라의 가을은 쓸쓸했다. 반듯한 길을 일정한 보폭으로 걷지 않는다. 거리의 풍경마저 조금씩 절뚝거리는 듯하다. 사람들의 땀과 웃음, 피곤함이 그 길에 뒤섞여 있다.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내가 떠올린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관광엽서에 담기엔 조금 구질구질할지 모른다. 그래서 더 사람 사는 곳 같다. 그 땀내 나는 삶의 틈에서 춤이 피어난다. 살 만해서 추는지, 이렇게라도 해야 살겠어서 추는지. 나도 어느새 그 골목에 들어서 있다. 한수진이 들려주는 쓸쓸함은 쉽게 날아가지 않는다. 사람의 몸에 배어 함께 골목을 걷는다. 어깨를 누르는 무게, 다리에 쌓인 피로, 그래도 다시 걸어보는 힘이 바이올린에서 들린다. 그러면서도 감정을 쥐어짜지 않으니 듣는 나도 서둘러 쓸쓸해질 필요가 없다. SH 아트앤클래식 제공 한수진이 피아졸라에게서 떠올린 것은 항구도시의 바다였다고 한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음악에서 바닷가 도시의 소금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 바다에는 사람의 마음도 섞여 있었다. 한수진은 피아졸라의 ‘사계’를 자연이 인간의 감정으로 번역된 듯한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거리와 사람을 떠올렸고, 그는 도시의 바다를 이야기했다. 꼭 같은 풍경을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기억에서 출발한 연주가 내 귀에 도착해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면, 음악이 제 일을 잘한 것 아닐까. 비발디에서 내가 수채화를 떠올렸다면, 한수진에게는 어릴 적 창밖으로 보던 바다와 초원이 있었다. 야마토하는법 두 살 때 영국으로 건너간 그는 처음 3년 반을 맨섬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처음 들은 ‘사계’는 눈앞의 자연을 귀로도 느끼게 해준 음악이었다고 한다. 비발디에 담긴 새소리 등을 표현할 때에도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악보에 적힌 자연을 연주하면서 어릴 적 보고 들었던 자연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한수진에게 ‘사계’는 배워서 아는 작품인 동시에 살아서 아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수진의 비발디가 사람이 없는 ‘무인풍경’이란 얘기는 아니다. ‘가을’만 해도 수확을 기뻐하는 춤과 술, 잠과 사냥이 담겼다. 일을 마친 사람들은 마시고, 취하고, 잠든다. 피아졸라는 도시, 비발디는 자연. 이렇게 나누면 깔끔하다. 그런데 듣다 보면 자꾸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비발디의 가을에도 술에 취한 사람이 있고, 피아졸라의 골목에도 바닷바람이 분다. 사람 사는 데와 계절이 드나드는 데를 따로 나눌 수는 없다. 한수진과 ECO는 그 사이를 스스럼없이 오간다. 듣는 나도 덩달아 골목을 걷다가 들판에 서게 된다. 한수진의 삶을 아는 이라면 오랜 치료와 재활, 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떠올릴 수도 있다. 간담회에서도 한수진은 연주를 쉬어야 했던 시간을 돌아봤다.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알게 됐고, 다시 연주할 수 있는 일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가 오랜 기다림 끝에 되찾은 연주를 나는 재생 버튼 하나로 듣는다. 연주자에게는 어렵게 돌아온 일상이 청자에게는 손쉽게 누리는 즐거움이 된다.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을 생각하면, 음악을 다시 틀 때의 짧은 손짓도 조금은 각별해진다. 이들의 연주는 10월 한국 공연장에서도 들을 수 있다. ECO는 15년 만에 내한해 24일 통영국제음악당, 25일 아트센터인천, 28일 대구콘서트홀, 3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한수진이 함께 연주할 작품은 비발디의 ‘사계’다. 녹음으로 남긴 음악과 공연장에서 다시 연주할 음악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한수진 역시 한국에서 단원들과 재회했을 때 어떤 호흡이 나올지 궁금해했다. 같은 악보를 놓고 함께 녹음했던 이들이지만 연주하는 장소와 시간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리즘에 들어오는 빛이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이 음반의 계절들을 조금 더 만져볼 생각이다. 피아졸라를 듣고 나면 비발디가 당기고, 비발디를 듣고 나면 피아졸라가 다시 듣고 싶어진다. 이쪽저쪽 오가느라 재생 횟수만 늘어간다. 손끝에 묻은 가을 가루는 당분간 털지 않기로 했다. 이 함께 빚어낸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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