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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빈오승경 | 작성일 | 26-10-06 01:3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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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릿에서 발견된 바알 상. 전쟁의 위력을 나타내는 신처럼 손을 높이 쳐들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주원준 촬영
1928년 시리아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큰 돌을 발견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돌을 치워버렸으나, 알고 보니 그 돌의 정체는 고대 지하 무덤을 덮고 있던 뚜껑이었다. 3,000년 넘게 봉인돼 있던 무덤 입구가 열렸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곧 클로드 샤페르와 샤를 비롤로 등 프랑스 학자들을 중심으로 발굴·해독 작업이 시작됐다. 일부 고대 문헌에서 언급되던 도시국가 '우가릿'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우가릿은 기원전 16~13세기 전성기를 누렸다. 고대 이스라엘이 같은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 기원전 10, 9세기에 건국된 나라였으니, 우가릿이 500여 년은 앞선 셈이다. 두 나라가 동일한 북서셈어를 사용한 것도 이스라엘이 선배 나라인 우가릿을 참고한 결과일 것이다.
교역과 외교로 일군 번영
지중해 동쪽 해안가 항구도시였던 우가릿의 위치. 예루살렘에서 우가릿까지 직선거리는 425㎞로, 서울-부산 간 직선거리(약 450㎞)보다 짧다. 주원준 제공
지리적으로 보자면 우가릿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라는 두 거대 세력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언제나 제국의 힘이 부닥치며 균형을 이루는 곳이었기 때문에 우가릿을 포함한 이 지역의 작은 도시국가들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다방면으로 열강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우가릿은 항구라는 이。을 활용했다. 남쪽 이집트에서도, 북쪽 히타이트에서도, 그리고 지중해를 통해서도 많은 배가 들어오는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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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전해지는 당시의 경제 문서들은 우가릿에서 곡물, 올리브유, 포도주 등 농산물과 더불어 목재, 알라바스타(설화석고), 구리, 주석, 금, 도자기 등 여러 자원 및 공예품이 우가릿에서 활발히 교역됐음을 알려준다. 우가릿은 각국 무역 대표부가 상주하면서 신용 거래와 금융이 발전했고, 페니키아인이 세운 이웃 항구도시 비블로스와는 협력과 경쟁 관계를 유지했다. 우가릿은 국제 정세에 밝은 메트로폴리스였다.
물론 세력 확장의 기회를 엿보던 주변 강대국들이 부유한 도시국가를 가만둘 리 만무했다. 기원전 18세기부터 내륙의 밋탄이 쳐들어왔고, 이집트 신왕국은 우가릿을 지중해 동편 해상 무역의 거.으로 쓰며 무역 보호에 대한 대가로 조공을 요구했다. 기원전 14세기엔 이집트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우가릿의 니크맛두 2세는 이집트가 아닌 히타이트에 조공을 바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기원전 14, 13세기 '히타이트의 평화' 시기가 도래하면서 우가릿에도 번영의 기회를 안겨줬다.
이렇듯 우가릿 입장에선 '외교의 묘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우가릿은 그 일을 훌륭히 해냈다. 기원전 2,000년대 여러 제국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우가릿은 언제나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요즘 표현대로라면 지정학적 요충지의 강소국이었다. 우가릿은 어느 땅도 정복하지 못했지만, 어떤 제국도 우가릿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독자적 문자 문화 꽃피운 우가릿
우가릿어 알파벳은 모두 30개로 이뤄져 있다. 우가릿 외 지역에서도 이따금 출토되지만, 거의 우가릿 안에서만 쓰였다. 우가릿인은 일상생활은 물론 신화, 서사시, 왕실문헌, 의례 문헌 등도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해 기록했다. 주원준 제공
우가릿이 위치했던 시리아-팔레스티나는 문자가 비교적 늦게 도입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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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4,000년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이미 문자 생활이 시작된 것과 비교하면 2,000년가량의 시차가 난다. 그렇지만 우가릿은 독자적 문자를 발전시킴으로써 여러 민족과 자유롭게 교류하면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했다. 모두 30개로 이뤄진 우가릿어 문자는 인류가 사용한 유일한 쐐기문자 알파벳이다. 우가릿에서 발견된 2,100。 이상의 토판은 신화, 의례, 의학, 왕실 문헌, 외교문서, 사적 또는 공적 편지, 법적 문헌, 경제 문헌, 인명록, 알파벳, 인장, 도량형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우가릿의 실체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었던 건 이런 문헌 덕이다.
이 중에서도 학계의 관심을 끈 건 '바알 신화', '키르타 이야기' 그리고 '아크하투 이야기'였다. 우가릿의 3대 문학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작품들은 기원전 2,000년대 고대근동 세계에서 빛났던 우가릿의 높은 지적 수준을 보여준다. 주목할 .은 이 3대 문학의 저자가 모두 슈반 사람 일리말쿠라는 서기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국 고유 문자로 왕실 서사시와 독자적 건국신화를 기록하며 자긍심을 느꼈을 것이다.
일리말쿠는 기원전 14세기 우가릿의 정치와 종교에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세 작품 모두에 서명을 남겼는데, 우가릿의 건국신화라고 할 수 있는 '바알 신화' 토판 맨 마지막에서 자신을 '우가릿의 임금 니크맛두 2세(기원전 약 1350~1315년 재위)의 고위 관리이자 대사제요 대목자'라고 소개했다. 훗날 이스라엘의 지도자 역시 스스로를 목자로 칭했는데, 이처럼 수백수천 년 동안 고대 근동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자신을 목자로 칭해왔다.
바알 신화에 투영된 우가릿의 현실 세계
'바알 신화'를 기록한 여섯 토판 가운데 맨 마지막 토판의 앞면. 이 토판 뒷면에 일리말쿠는 자신에 대해 소상하게 적은 서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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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제 정세가 요동치던 기원전 14세기에 니크맛두 2세를 모시며 왕가의 영속과 우가릿의 번영을 고민하던 고위 신하이자, 우가릿의 3대 문학을 모두 기록한 문인이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주원준 촬영
일리말쿠가 남긴 '바알 신화'는 우가릿 주신인 바알에 관한 영웅담이다. 바알은 신들의 세계에서 왕권을 인정받지 못하던 신이었다. 하지만 혼돈의 신과 죽음의 신을 물리치고 질서와 생명을 수호하는 신이 돼 자신의 신전을 건설하고 임금으로 등극한다. 줄거리 자체는 흔한 서사일지 모르지만, 우가릿 지도층의 숨겨진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장치들이 적지 않다.
우선 바알은 세계를 호령하던 바빌론의 주신 마르둑과 출신부터 달랐다. 바알은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신이 아니어서 일종의 '2급 신'이자 아웃사이더였다. 바알은 다양한 신들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다. 바알은 우가릿에 신전을 세울 때도 상왕인 엘과 왕비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최근엔 대체로 이 상왕을 히타이트로 해석한다. 게다가 마르둑은 왕좌에 오르기 전 이미 신들의 총회에서 임금으로 선택됐지만, 바알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그런 승인을 받지 못했다. 바알의 왕위는 늘 외부 위협에 시달렸고, 언제나 상왕의 의중을 살펴야 할 처지였다.
일리말쿠는 '바알 신화'에 우가릿 왕실에 필요한 처신과 현실적 지혜를 담은 것 같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 우가릿은 제국이 아니며 바알은 최고신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우가릿의 주신은 여러 신들의 도움을 받아 왕권을 확보하고 우가릿에 독자적 신전을 짓고 떳떳하게 살았다. 일리말쿠의 이런 지혜는 현실정치에서도 작동했고 그의 조국은 번영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가릿은 한순간 급격히 몰락했다. 바로 '바다민족'이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가릿에서 발견된 석비에 바알이 높이 쳐든 손에는 곤봉을, 다른 한 손에는 번개다발을 든 비바람의 신으로 묘사돼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주원준 촬영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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