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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가현석 | 작성일 | 26-10-05 2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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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한라산을 자주 오르다 보면 운 좋게 정상에서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그곳까지 올라온 시간과 수고를 잊게 할 만큼 장엄하다. 새해 첫날 일출 산행 예약이 열리면 많은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몰리는 것도 아마 그런 경험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라산의 정상은 단순히 도달해야 할 지.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한순간을 만나기 위해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순간 역시 정해진 입산 시간과 통제 시간 안에서 만난다. 예약제는 산행의 시간 감각도 바꾸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탐방로에 들어서야 하고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는 통제 시간을 살펴야 한다. 늦으면 더 올라갈 수 없다. 백록담에 안개가 가득해도 마냥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시계를 확인하고 대피소에서 쉬는 시간을 조절한다. 산행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정상으로 가는 날에는 어느 순간 같은 시간표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 시간표는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10월부터는 낮이 짧아지면서 탐방로별 입산과 하산 시간이 앞당겨진다. 성판악과 관음사의 입산 마감은 오전 11시 30분, 백록담에서는 오후 1시 30분부터 하산해야 한다. 같은 길이라도 계절에 따라 걸을 수 있는 시간은 달라진다. 한라산을 걷는 일이 자연의 시간과 관리의 시간을 함께 살피는 일이 된 셈이다.
통제시간 안내판을 지나 정상 방향으로 향하는 탐방객들.
그렇게 정상으로 향하는 하루는 사실 산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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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휴대전화 속 탐방로 예약 페이지를 열어 날짜와 입산 시간을 고른다.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이미 자리가 차 있어 새로고침을 누르며 취소 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릴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산행을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운 좋게 빈자리를 잡는다. 등산화를 신기도 전에 산행은 이미 작은 화면 위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난 회에서 살펴보았듯 국립공원 이후 한라산은 보호 기준과 이용 질서 속에서 관리되는 산이 됐다. 탐방로와 시설을 정비하는 데서 나아가 최근에는 탐방객의 시간과 발걸음까지 관리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그 중심에 탐방예약제가 있다.
7회에서 다룬 조선시대 유산기 속 산행에는 오늘날과 같은 예약 시간이 없었다. 날씨와 체력, 길을 아는 안내인의 유무가 산행을 좌우했다. 국립공원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성판악과 관음사에서는 별도의 예약 없이 산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이 늘면서 탐방로 훼손과 정상부 혼잡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2020년 시범 시행을 거쳐 2021년부터 성판악은 하루 1,000명, 관음사는 500명으로 탐방 인원이 제한됐다. 정상부로 향하는 사람을 일정하게 조절해 훼손과 혼잡을 줄이려는 선택이었다.
백록담 정상에 오른 탐방객들.
예약제가 만든 변화는 다른 탐방로에서도 나타났다. 예약이 필요 없는 어리목과 영실로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고, 성판악에 집중됐던 탐방객 일부가 관음사로 이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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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에 만든 경계가 다른 길의 풍경까지 바꾸었다.
같은 한라산도 사람마다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처음 걷는 사람에게는 목적지와 거리가 먼저 보이지만, 여러 번 걷다 보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이나 익숙한 쉼터, 어느 날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어디에 사느냐만큼 그 산을 어떻게 만나왔느냐도 한라산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라오름과 탐라계곡도 누군가에게는 여행 중 한 번 들르는 곳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계절마다 다시 찾는 익숙한 길이다. 산을 지키기 위한 예약제의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정상에 가지 않는 사람까지 같은 예약을 해야 하는지 묻는 목소리가 나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겨울 한라산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탐방객들.
2024년 11월에는 관광 활성화를 이유로 한 달 동안 탐방예약제가 한시적으로 해제됐다. 예약 없이 산을 찾을 수 있어 반가웠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보호를 위해 시작한 제도가 다른 이유로 잠시 멈추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비슷했다. 결정 자체보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25년 5월 예약 구간이 바뀌었다. 이제 성판악에서는 진달래밭, 관음사에서는 삼각봉까지 예약 없이 오를 수 있다. 백록담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에만 예약이 남았다. 정상까지 가지 않는 사람에게 산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요즘 산을 걷다 보면 같은 길을 오르던 사람들이 중간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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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백록담으로 향하고, 어떤 사람은 삼각봉이나 진달래밭에서 쉬다가 내려간다. 사라오름이나 탐라계곡을 목적지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번 조정은 정상부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른 산행을 조금 더 받아들이려는 변화처럼 보인다.
삼각봉대피소에서 바라본 왕관릉 일대.
그렇다고 지금의 방식이 마지막 답인지는 알기 어렵다. 예약 없이 열린 구간에 사람이 몰리지는 않는지, 정상으로 향하는 인원은 적절한지, 사람들은 이 경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탐방예약제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없애야 한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정상부를 지키기 위한 제한도 필요하고 서로 다른 이유로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주일에도 몇 차례 한라산을 오른다. 자주 오르기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익숙해서 놓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다만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다 보면 제도가 사람의 걸음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조금씩 보인다.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과 사라오름이나 진달래밭, 삼각봉에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같은 산길을 걷는다.
백록담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그러나 그곳에 다가가는 방법은 여러 번 달라졌다. 탐방예약제는 완성된 규칙이라기보다 한라산과 사람 사이에서 계속 다듬어지고 있는 약속에 가까워 보인다. 산의 중심은 그대로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의 의미는 사람들의 걸음 속에서 새롭게 쓰이고 있다.
김경미
제주대학교 대학원 지리교육학부 박사과정에서 한라산과 제주 공간의 인문지리적 의미를 연구하고 있다. 제주트레일워킹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걷기와 달리기를 즐기는 네 아이의 엄마로 다수의 울트라트레일 대회를 완주했다.
, 관음사는 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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